경주 첨성대 주변에는 가을 꽃 구경할수있도록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이날은 비가 와서 다니기는 불편했지만 꽃구경하기에는 나쁘지않은 날씨었다.
여기는 경주 첨성대 옆에 있는 고스모스 밭이라고 해야 할까 이날은 비가와서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코스모스 옆에는 핑크뮬리가 있어서 비바람을 피해서 사진을 찍었지만 보열줄수있는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 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연꽃봉우리를 사각형의 연곽(蓮廓)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乳廓) 아래로 2쌍의 비천상(飛天像)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앞·뒷면 두 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꽃모양으로 굴곡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다.
경주박물관
높이 9.17 m, 밑지름 4.93 m, 윗지름 2.85 m로 중간에 남쪽 방향으로 정사각형의 문이 있으며 상방하원(上方下圓)의 형상을 갖춘 돌탑 형식으로 축조되었다. 위쪽 방형의 각 면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데, 어떤 주술적 또는 학술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주장이 있다. 당대의 우주관은 천원지방 , 즉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나 있다고 믿는 것이었는데 첨성대는 반대 형상이기 때문이다.화강암 벽돌 362개을 이용해 석축 27단을 쌓았음 역시 '1년'의 시간과 28수 별자리, 혹은 27대 국왕인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으로 채웠고 맨 위에 우물 정(井)자 장대석이 있다. 과거에 그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다고 추정된다. 춘분과 추분 때는 태양광이 창문을 통해 첨성대 밑바닥을 완전히 비추고, 하지와 동지 때는 완전히 사라지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첨성대가 위치한 공원의 입장료는 무료이다. 과거에는 입장료 500원을 받았는데, 첨성대 부지의 울타리가 매우 낮아 바깥에서도 잘 보였기 때문에 입장하지 않고 관람이 가능했다. 경주시는 2014년 1월 1일부터 시민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첨성대 관람을 무료화했다.
다 쓰러져버린 핑크뮬리 비가와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않지만 핑크뮬리를 남겨야한다.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는암석에 발달하는 절리 중에서, 일련의 절리면이 교차하면서 암석이기둥모양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 혹은 그러한 구조를 만든절리면을 말한다. 암석이 결과적으로다각형기둥 모양이 열주하여 있게 보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이론상으로는벌집처럼원형으로 수축하면서 깔끔한 6각기둥 모양으로 되지만, 실제로는 3~7각형의 다양한 기둥들이 만들어진다. 기둥의 직경은 작게는 수 센티미터 크기밖에 안되지만 크면 미터 단위이기도 하다. 기둥의 높이 역시 수 미터에서 백 미터 규모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주상절리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의하여마그마의 외부 표면이 급속도로 식어서 굳으면 내부의 마그마는 외부의 굳어진 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지면서 수축하고, 이 때 상하 방향은 중력 때문에 길이를 유지하지만 좌우 방향은 잡아 줄 힘이 없어 수축하면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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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 주상절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래
양남주상절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파란하늘과 멀리 검은 구름이 끼어 점점 바람이 불어서 사람이 제대로 서있지 못할정도의 바람이 불었다